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컴퓨터로 인터넷에서 잡다한 것들을 찾아서 보고 있던 도중, 메신저에 어떤 친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반가움에 말을 걸었던 것이 밤을 새게 만들 줄은 몰랐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외교사 얘기가 나와서 한참 얘기하다가, 프랑스 시민혁명 시기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살짝 격하게 토론을 했다. 나폴레옹 전쟁에 대해서, 그 친구는 프랑스의 혁명노선의 전파라는 목적을 가진, 신체제와 구체제의 대립이라는 진보적인 전쟁이라는 입장이었고, 나는 나폴레옹 전쟁은, 역사적으로 이어져오던 오스트리아에 대한 프랑스의 혐오정책의 연장선인, 극히 보수적인 전쟁이라는 입장이었다.
물론,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주장은 정말 다양해서, 혁명 프랑스 시기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이긴 하다. 어쨌든, 이 논쟁을 하다 보니, 프랑스 혁명의 체제의 핵심인 인본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당연히 그 뿌리인 르네상스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게 되었다.
인본주의 사상은 르네상스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흔히 중세를 암흑기라고 부르는데, 이 암흑기(Dark Age)라는 말에는 '단절'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즉,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암흑기라는 단절의 시기를 거친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중세의 신에 매여있는 인간의 입장을 벗어나서, 고대의 인간중심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더 승화시켜 인본주의를 만들었다.
인본주의는 숭고한 것이다. 라는 주장에 대해서 난 회의적이다. 물론,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에 대해서다. 현대의 인본주의는 분명히 그 뜻을 거의 찾았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더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 하지만, 현대 인본주의의 뿌리인 시민혁명 시기의 인본주의와,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는 다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인본주의는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는 어떤가? 르네상스 시기는 앞서 말했듯이,
중세 암흑기의 반동으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이 중심인 신학 대신, 인간이 중심인, 철학, 인문학을 탄생시켰다. 신 대신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의 입장에서 모든 학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는 엄밀히 말하자면 신민주의나 시민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당시에도 노예가 있었으며, 유럽의 시민이 아닌 인간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인문학의 인(人)자는 유럽인을 뜻하는 것이었다.

단두대를 이용한 처형은 패배자의 단죄에 불과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인본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의 인간은 절대 평등하지 않았고,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 지식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들은 귀족들과 왕을 처형하면서도, 귀족과 왕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귀족과 왕의 처형은, 귀족과 왕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았기 때문에 패배자인 그들을 죽였던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권력이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다시 그 사이에서 독재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수순을 다시 밟아가다가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까지는 '시민의식'이 아니라 '신민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전파'라는 거창한 명분을 뒤집어 쓰고 다른 왕정 국가들과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는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결과는 무엇인가. 그는 점령한 지역들에 '왕'을 임명했다. 혁명의 전파가 아니라 왕조의 교체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민의식이 생긴 것은, 나폴레옹의 실패 이후다. 나폴레옹이 어리숙한 시민 권력을 찬탈해 자신의 새 왕조를 세우는 것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에게 의식이 생긴 것이다. 진정한 '공화정'은 부르봉 왕가의 실패가 아니라 나폴레옹의 실패 이후에 탄생했다.
덧붙여서, 이건, 전적으로 나폴레옹 전쟁을 보수적인 입장으로 보는 나의 시각이며,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