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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을 좋아하는 산돼지의 인터넷 우리.

溫故知新

2008/08/09 18:36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역사를 배우고 옛 것을 배움에 있어, 단지 그것을 알기만 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이 학습을 한다는 것,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의 근본은, 이전부터 내려오는 정보나 기술의 전승에 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가르치고,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그 옛날, 원시인들이 도구를 쓰는 법을 자손에게 가르쳐주고, 그 자손이 문자를 만들고, 여러가지 '살아가는 방법'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가르쳤던 것은, 후손들이 자신들이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서였다. 즉, 전승자들은, 전수자들이 남긴 것들을 보면서, 그들이 했던 실패를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학문에 있어서 단지 '배우기 위해서 배우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문화나 습관이 아닌, '학문'으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내려왔던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옛 것들, 그리고 역사는, 고루한 이전의 기억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살아왔던 사람들의 실패에 대한 반성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단지 '알고만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남기는 이야기 또한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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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어떤 학문이든, 현상을 일반화, 단순화 시켜서 분석을 편하게 만드는 '이론'이 있다. 모형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이론이란 개념은 굉장히 폭넓어서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현상을 예측하는 것, 정태적인 것, 동태적인 것, 그리고 분석수준에서의 세세한 차이까지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이론이라는 개념에서 핵심적인 점은, '단순화'이다. 현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고정시키고, 중요한 요소들로만 변수를 구성해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한다. 얼마만큼 단순화 시킬 것인가는 이론마다 차이가 있지만, 요소들을 하나 둘씩 더 더하게 되면, 현상설명력은 더 늘겠지만, 이론의 경제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론이 가지는 가장 핵심적인 두가지 가치는, 이론의 경제성과 이론의 설명력이다. 풍부한 설명력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 복잡해서 이용하기 힘든 이론이나, 아주 단순하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있는 이론은 가치가 별로 없다. 단순하면서도 설명력이 강력한 이론이 가장 바람직하나, 대부분 이론들에게 있어서 설명력과 경제성은 부의 관계에 있다. 즉, 하나를 희생시켜야만 하나를 더 살리게 되는 그런 딜레마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론이든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는 있다. 단순하고 경제적인 이론은 그 이론 나름대로, 복잡하고 풍부한 이론은 그 이론 나름대로 그 학문에 기여한다. 다양한 이론중에서, 물론 잘못된 이론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점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일 뿐, 각각의 이론들은 그 학문에 대해 적실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론이 단순하고 경제적인 이론을 추구할수록, 현실설명력이 점차 떨어지는 것처럼, 이론이 포함하는 학문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이론 자체의 현실설명력 또한 떨어진다. 특히 모든 학문이 설명하는 현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이론은 그 복잡성을 포함하지 못하고 아주 미시적인 부분만 바라보게 된다.

 학문을 아우르는 통합적이고 거시적인 이론도, 현실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미시적인 부분이 될 수 밖에 없다. 거시경제학은 경제학의 입장에서만 거시적인 것이고, 신현실주의나 신자유주의 같은 이론들도, 국제사회나 국제정치의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다. 즉, 1차대전 직후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현상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통화량과 물가의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은 바이마르 정부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오해와 인플레이션 조세에 대한 의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정치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승전국들의 무리한 배상금 요구와, 프랑스의 독일 주권의 간섭에 대한 저항으로 초인플레이션을 방관했다고 본다.

 사실 한가지 분야만 계속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학문들의 이론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겠지만, 현상을, 특히 역사적인 사실을 분석하거나, 사회를 설명하려는 일련의 사람들에겐 모든 이론들이 전부 적실성이 있다. 그 중 어떤 이론을 선택하느냐는 연구자의 선택이지만, 문제는 이런 이론들 사이에 충돌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설명력과 경제성중에 하나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론처럼, 사회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도 이론이 포함할 수 없는 복잡성을 맞이하여 중요한 요소(이론)들 중 하나만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바로 그것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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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나폴레옹 전쟁은 진정한 혁명전쟁 이었을까. 라는 글에 덧붙여서 써본다.

 자유, 평등, 박애로 대표되는 '혁명정신'이 유럽에 퍼져나가는 과정은, '혁명정신'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사실 '혁명정신' 자체만큼, 그것의 전파의 과정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유럽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시민주의의 확산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선 포스트에서 먼저 언급했듯, 나폴레옹 전쟁 당시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인본주의, 시민정신이 없었다. 시민들, 시민들을 대표한다고 자처했던 제 3계급인 부르주아들은, 고대의,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의 유산을 물려받아, 그것을 혁명에 대한 충분한 '명분'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는 유럽에서 거의 유일한 절대왕정 국가였고, 그만큼 국민의 시민의식은, 상업 도시국가인 베네치아나, 제노아, 브레멘, 등, 많은 국가들에 비해 유럽 내에서도 가장 떨어지는 편이었다. 물론, 절대왕정의 부조리에 대한 의식은 있었다. 하지만, 왕이 곧 국가가 아니라, 자신들이 곧 국가라는 의식은 없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겠다.

 어쨌든, 부르주아들에 의해 주도된 혁명의 핵심적인 명분은 '자유, 평등, 박애'였고, 시민정신(사실은, 부르주아들을 위한 시민정신)의 전파였다. 이 사실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시민의식이 싹트고 있었던 진보적인 국가에에서는 시민들에게 희망을, 오스트리아 같은 전제국가에게는 왕들과 귀족들에게 불안감을 선사했다.

 특히, 프랑스와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 같은 경우에는, 다문화 다인종 국가였고, 나라 자체도 헝가리왕국과의 동군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만큼, 다양한 민족들에게 독립의 빌미를 주는 혁명 프랑스는 눈엣가시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압제에서 신음하고 있던 다양한 민족들은, 혁명 프랑스를 보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 유럽이 혁명 프랑스의 기치에 희망을, 혹은 불안을 느끼고 있을때, 프랑스 자체는, 패배한 부르봉 왕가를 대신할 새로운 '영도자'를 찾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혁명정신의 전파에 대한 오해의 핵심이다. 사실상, 프랑스는 혁명정신의 전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혁명정신 자체가 부르주아들이 가진 명분인데, 그것을 관심도 없는 다른 나라들에게 전파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센, 특히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들은, 프랑스가 어떻게 생각하든, 왕조의 붕괴에 경악하고, 보수적인 왕정을 복구시키기로 결정한다. 프랑스 부르주아들의 명분은, 자국 부르주아들의 명분이 될 수 있었기에, 보수 왕정 국가들은 혁명 프랑스에 대해서 강경 노선을 선택한다.

 한마디로, 초창기의 혁명정신의 전파를 위한 전쟁은, 단순히 보수 국가들로부터 부르주아 정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후반 나폴레옹 시기, 즉, 나폴레옹 전쟁은 혁명정신의 전파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나폴레옹 본인 자체가 가장 큰 혁명정신의 파괴자였고, 유럽에 대한 전쟁은 정복전쟁, 그리고 응징을 위한 전쟁이었을 뿐이다.

베토벤

베토벤이 나폴레옹이 혁명가가 아니라, 다른 전제군주들과 똑같은 자라는 것을 알고 실망했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많은 유럽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혁명 프랑스가, 그리고 나폴레옹이 자신들을 '해방' 시키러 온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붕괴된 왕조에 나폴레옹은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새로운 '왕'으로 앉혔고, 유럽은 다시 보수로 회귀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유럽에 고조되던 혁명 분위기는, 정작 프랑스가 조장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프랑스가 그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으나, 위대한 유산을 위한 혁명의 공이 프랑스에게 있다는 것은 한번 더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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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컴퓨터로 인터넷에서 잡다한 것들을 찾아서 보고 있던 도중, 메신저에 어떤 친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반가움에 말을 걸었던 것이 밤을 새게 만들 줄은 몰랐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외교사 얘기가 나와서 한참 얘기하다가, 프랑스 시민혁명 시기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살짝 격하게 토론을 했다. 나폴레옹 전쟁에 대해서, 그 친구는 프랑스의 혁명노선의 전파라는 목적을 가진, 신체제와 구체제의 대립이라는 진보적인 전쟁이라는 입장이었고, 나는 나폴레옹 전쟁은, 역사적으로 이어져오던 오스트리아에 대한 프랑스의 혐오정책의 연장선인, 극히 보수적인 전쟁이라는 입장이었다.

 물론,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주장은 정말 다양해서, 혁명 프랑스 시기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이긴 하다. 어쨌든, 이 논쟁을 하다 보니, 프랑스 혁명의 체제의 핵심인 인본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당연히 그 뿌리인 르네상스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게 되었다.

 인본주의 사상은 르네상스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흔히 중세를 암흑기라고 부르는데, 이 암흑기(Dark Age)라는 말에는 '단절'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즉,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암흑기라는 단절의 시기를 거친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중세의 신에 매여있는 인간의 입장을 벗어나서, 고대의 인간중심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더 승화시켜 인본주의를 만들었다.

 인본주의는 숭고한 것이다. 라는 주장에 대해서 난 회의적이다. 물론,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에 대해서다. 현대의 인본주의는 분명히 그 뜻을 거의 찾았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더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 하지만, 현대 인본주의의 뿌리인 시민혁명 시기의 인본주의와,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는 다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인본주의는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는 어떤가? 르네상스 시기는 앞서 말했듯이, 중세 암흑기의 반동으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이 중심인 신학 대신, 인간이 중심인, 철학, 인문학을 탄생시켰다. 신 대신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의 입장에서 모든 학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는 엄밀히 말하자면 신민주의나 시민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당시에도 노예가 있었으며, 유럽의 시민이 아닌 인간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인문학의 인(人)자는 유럽인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두대를 이용한 처형은 패배자의 단죄에 불과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인본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의 인간은 절대 평등하지 않았고,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 지식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들은 귀족들과 왕을 처형하면서도, 귀족과 왕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귀족과 왕의 처형은, 귀족과 왕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았기 때문에 패배자인 그들을 죽였던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권력이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다시 그 사이에서 독재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수순을 다시 밟아가다가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까지는 '시민의식'이 아니라 '신민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전파'라는 거창한 명분을 뒤집어 쓰고 다른 왕정 국가들과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는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결과는 무엇인가. 그는 점령한 지역들에 '왕'을 임명했다. 혁명의 전파가 아니라 왕조의 교체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민의식이 생긴 것은, 나폴레옹의 실패 이후다. 나폴레옹이 어리숙한 시민 권력을 찬탈해 자신의 새 왕조를 세우는 것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에게 의식이 생긴 것이다. 진정한 '공화정'은 부르봉 왕가의 실패가 아니라 나폴레옹의 실패 이후에 탄생했다.

 덧붙여서, 이건, 전적으로 나폴레옹 전쟁을 보수적인 입장으로 보는 나의 시각이며,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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