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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을 좋아하는 산돼지의 인터넷 우리.

溫故知新

2008/08/09 18:36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역사를 배우고 옛 것을 배움에 있어, 단지 그것을 알기만 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이 학습을 한다는 것,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의 근본은, 이전부터 내려오는 정보나 기술의 전승에 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가르치고,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그 옛날, 원시인들이 도구를 쓰는 법을 자손에게 가르쳐주고, 그 자손이 문자를 만들고, 여러가지 '살아가는 방법'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가르쳤던 것은, 후손들이 자신들이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서였다. 즉, 전승자들은, 전수자들이 남긴 것들을 보면서, 그들이 했던 실패를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학문에 있어서 단지 '배우기 위해서 배우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문화나 습관이 아닌, '학문'으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내려왔던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옛 것들, 그리고 역사는, 고루한 이전의 기억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살아왔던 사람들의 실패에 대한 반성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단지 '알고만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남기는 이야기 또한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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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편지.

2008/08/03 16:34

 3년만에 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비웃기라도 하는듯, '원고지'에 편지를 써서, 곱게 접어 나에게 부쳤던 것이다. 내 메일주소나 미니홈피 주소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오랫만에 연락을 하는 거라 자필로 말을 하고 싶었단다. 덕분에 그의 독특한 필체를 보면서 나도 간만의 감상에 젖었다.

 그러고보면 내가 최근에 편지를 언제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 몇달 전에 군대 간 친구에게 쓴 적이 있구나. 하지만 그 외에, 누군가에게 나의 '자필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편지를 쓴 기억은 까마득하다. 메신저에 들어가면 그들이 있고, 핸드폰 주소록에도 그들이 있다. 현대 사회는 편지를 쓰기엔 너무 귀찮고, 불편하고, 힘들다.

 그 친구는 편지 말미에, 현재 자신의 삶은 'ad hoc vita' 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안정되지 않은 삶을 두고 그렇게 썼겠지만, 나는 그것을 보면서, 더이상 불편한 편지가 없는, 직접 글로 마음을 전달하기엔 너무나 귀찮은 '순간순간적인 현대의 삶'을 떠올렸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나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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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100문답.

2008/07/30 19:59

사람의 심리라는게 참 신기한게, 왠지 뭔가 못할 것 같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그것을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도 그 심리유도에 낚였다는 것이다. (파닥파닥) 여튼 한번 하기로 했으니 근성을 가지고 문답을 끝마쳤다. (이거 의외로 근성이다 ㅠㅠ)

Yes는 진한글씨, No는 그냥 글씨.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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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어떤 학문이든, 현상을 일반화, 단순화 시켜서 분석을 편하게 만드는 '이론'이 있다. 모형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이론이란 개념은 굉장히 폭넓어서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현상을 예측하는 것, 정태적인 것, 동태적인 것, 그리고 분석수준에서의 세세한 차이까지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이론이라는 개념에서 핵심적인 점은, '단순화'이다. 현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고정시키고, 중요한 요소들로만 변수를 구성해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한다. 얼마만큼 단순화 시킬 것인가는 이론마다 차이가 있지만, 요소들을 하나 둘씩 더 더하게 되면, 현상설명력은 더 늘겠지만, 이론의 경제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론이 가지는 가장 핵심적인 두가지 가치는, 이론의 경제성과 이론의 설명력이다. 풍부한 설명력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 복잡해서 이용하기 힘든 이론이나, 아주 단순하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있는 이론은 가치가 별로 없다. 단순하면서도 설명력이 강력한 이론이 가장 바람직하나, 대부분 이론들에게 있어서 설명력과 경제성은 부의 관계에 있다. 즉, 하나를 희생시켜야만 하나를 더 살리게 되는 그런 딜레마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론이든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는 있다. 단순하고 경제적인 이론은 그 이론 나름대로, 복잡하고 풍부한 이론은 그 이론 나름대로 그 학문에 기여한다. 다양한 이론중에서, 물론 잘못된 이론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점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일 뿐, 각각의 이론들은 그 학문에 대해 적실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론이 단순하고 경제적인 이론을 추구할수록, 현실설명력이 점차 떨어지는 것처럼, 이론이 포함하는 학문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이론 자체의 현실설명력 또한 떨어진다. 특히 모든 학문이 설명하는 현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이론은 그 복잡성을 포함하지 못하고 아주 미시적인 부분만 바라보게 된다.

 학문을 아우르는 통합적이고 거시적인 이론도, 현실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미시적인 부분이 될 수 밖에 없다. 거시경제학은 경제학의 입장에서만 거시적인 것이고, 신현실주의나 신자유주의 같은 이론들도, 국제사회나 국제정치의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다. 즉, 1차대전 직후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현상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통화량과 물가의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은 바이마르 정부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오해와 인플레이션 조세에 대한 의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정치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승전국들의 무리한 배상금 요구와, 프랑스의 독일 주권의 간섭에 대한 저항으로 초인플레이션을 방관했다고 본다.

 사실 한가지 분야만 계속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학문들의 이론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겠지만, 현상을, 특히 역사적인 사실을 분석하거나, 사회를 설명하려는 일련의 사람들에겐 모든 이론들이 전부 적실성이 있다. 그 중 어떤 이론을 선택하느냐는 연구자의 선택이지만, 문제는 이런 이론들 사이에 충돌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설명력과 경제성중에 하나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론처럼, 사회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도 이론이 포함할 수 없는 복잡성을 맞이하여 중요한 요소(이론)들 중 하나만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바로 그것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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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난해한 글쓰기.

2008/03/16 16:17
 글을 쓴다는 것은, 물론 일기같이 개인적인 욕구의 충족이나, 일상의 기록같은 글쓰기도 있겠지만, 대개는 남에게 보여주고, 남을 설득시키거나 하는 등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남을 설득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글은 문장 논리나 뒷받침하는 증거나 증명 이외에도 문장 자체의 틈도 없어야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논리와 문장구조를 자랑하더라도, 맞춤법이 틀리다던가, 철자가 틀리다던가 하면 글의 목적 외로 신뢰감을 잃게 된다.

 물론, 맞춤법이나 철자 문제 같은 경우는 아주 미시적인 것으로 주장과는 상관이 없는데다가, 그것을 고치는 것은 별다른 힘이 들지 않는다. 가장 힘들고 중요한 것은 역시나 '논리'와 '자료'다. 글에서 보여지는 개인의 논리라는 것은, 그 사람의 사유체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계속된 훈련과 생활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꾸거나 개선시키는 것은 아주 힘들다. 자료는 부차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주장을 정확하게 뒷받침하는 자료는 찾기도 상당히 힘들뿐더러, 그것을 자신의 논리와 맞추는 작업은 더더욱 힘들다.

 이런 면에서만 봐도, 글쓰기, 특히나 남을 설득시키는 글쓰기는 아주 어렵다. 더구나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글쓰기를 배제해야 하고, 설득력을 더하기 위하여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까지 고려하게 되면 아주 곤란하게 된다.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은 글쓰기를, 그리고 글을 쓰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고민을 한다.

 역시나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해서 좋은 글을 읽고, 좋은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도 이 블로그를 쓰는 것이다. 친구와 글쓰기에 대해 대화를 하다가 평소의 고민에 대해서 짧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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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가끔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는데, 주로 고등학생들을 만나다보면 가끔 이런 의문이 든다. 문과와 이과는 왜 나누는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문과와 이과는 '계열'로, 문과는 인문사회적인 과목들을 묶어놓은 다발이고, 이과는 자연과학적인 과목들을 묶어놓은 다발이다. 수준별 교육이나 선택과목의 다양화 같은 시스템이 없는 우리나라로선 이런식으로 계열을 나눠놓고 진학시키는게 관리하기 수월하긴 하다.

 문제는 문과, 이과의 분과가 관리의 영역을 넘어서 그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즉, 문과가 인문사회계통의 과목을 배운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문과'라는 계열 자체에 얽매여버린 것이다. 이과도 마찬가지다. 그때문에 경제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문과'니까, 수학을 배우지 않고, 이과 학생들도 '이과'니까 국사나 역사 과목을 배우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 아닌가? 경제학을 배울 학생에겐 수학이 필요하고, 지구과학을 배울 학생에겐 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학은 문과고, 지구과학은 이과이기 때문에 각각 필요한 과목들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난, 문과니까 수학은 필요 없어.", "난, 이과니까 국사같은 건 공부 안해도 돼." 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버리는 것이다. 시스템이 왜곡되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문제에 대해서, 특히, 중등교육 문제에 대해서 오로지 진학에만, 그리고 입시지옥의 압력을 완화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쏟는다.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좋을까? 야간자율학습을 없애면 학생들이 더 편해질까? 라는 질문에만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입시 문제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국가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고, 갈등도 많은 문제이기 때문에, 세세한 시스템적 문제에 대해서 신경 쓸 여지가 없긴 하다. 아니, 여지가 없다기보단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육'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학시킬까, 라는 것을 고민하는 문제는 분명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칠까, 라는 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도서관에 갔다가,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간단하게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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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진보에 대한 패러다임은 정말 다양하지만, 가장 포괄적이고 원론적인 내용은, 사회는 사회의 요구와 시민의 필요, 그리고 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일종의 관성에 의해 진보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기술과 과학의 진보는 사회의 변화에 맞춰 변화하면서 따라온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진보가 기술 진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르네상스 시기를 든다. 기독교의 강력한 통제에서 사회가 벗어나자, 그에 따라 억눌린 과학과 기술, 철학이 발전했던 시기이다.

 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기술 진보에 따라 사회가 따라온다고 주장한다. 즉,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기술이 사회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진보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대중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태도이다.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 하에서는 기술 진보가 억제되고, 긍정적인 인식 하에서는 기술 진보가 촉진된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대중의 지지가 사회변화를 일으킨다는 원론적인 이론으로 회귀한다.

 다만, 그들의 관점 하에서는 과학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매개로 작용하며, 핵심적인 수단이다. 그들은 산업혁명을 주요한 예로 드는데, 산업혁명 시기엔 사회는 변화에 대해 보수적이었지만, 증기기관과 같이 폭넓은 기술의 혁신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꿔 놓았다. 그에따라 변화에 대해 보수적인 계층이 반발을 했지만, 결국 도태되고 사회는 기술에 영합하여 따라가게 되었다.

 어쨌든간에, 과학기술을 핵심적인 진보의 매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진보는 대중의 과학 기술에 대한 태도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들은,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대중의 철학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들이 진보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국의 '사이언스 호라이즌'이다. 영국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초거대 프로젝트로, 일반 대중이 과학과, 과학기술에 의해 변화된 미래에 대해 토론을 하고, 대중들로 하여금 영국의 장래 과학 기술에 대한 정책과 노선의 구상에 참여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부분은, 과학 기술에 대한 대중의 입장을 조사하는 것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영국 시민들에게 논쟁적인 기술 문제, 즉, 복제에 관한 문제라던가, 유전자 조작에 관한 문제 등이 어떻게 미래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조사한다. 조사를 하는 조사원에서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학자들까지 포함한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영국인들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밝혀냈고, 교육과 정책 수립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술의 진보와, 그의 이용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부족한 편이다. 그렇기에 기술에 수반하는 다양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와, 그것들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 기술만능주의와 선과학주의에 빠지기 쉽다. 한때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태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로, 과학에 대한 대중의 왜곡된 태도와 인식이 맹목적인 추종과 선과학주의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져 합리적이고 이성적, 그리고 윤리적인 판단을 방해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운하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운하 지지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완공 기간에 대한 문제도 '기술'로 해결될 것이고, 물류에 관한 바지선의 속도 문제도 '기술'로 해결될 것이고, 착공하면서 생기는 제반 문제들도 '기술'로 해결될 것이며, 완공 후의 수질과 수량에 대한 문제도 '기술'로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게 바로 맹목적인 기술만능주의가 아니면 무엇인가? 실제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기술로 해결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값비싼 댓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건 생각하지 않는다. 'MB가 다 해주실거야' 라는 말처럼 '기술이 다 해주실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영어몰입교육같은 것 보다 영국의 '사이언스 호라이즌'과 같은 실험이 우리 사회엔 더 필요하다. 이미 사회 전체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몰이해로 비롯한 문제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진화된 사회'를 말하는 새 정부에게 이 점에 대해서 기대를 걸어본다. 현재 일어나는 문제들이 어떤 것에 기인하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을 해보고, 대중의 인식과 발맞춰서 나가는 정책을 기대한다. (정말, 제발, 기대에 부응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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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블로그 축제는 끝났지만, 관련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이번엔 블로그와 블로거, 그리고 온라인의 정체성(?) 문제까지 논쟁이 다다른 듯, 여기저기서 관련 포스트들이 눈에 띈다.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 부분을 이미 지적해주셨기 때문에, 그냥 지나갈까 생각하다가, 한번쯤 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단순한 의견의 나열 정도로 써 본다.

 먼저 블로그는 '온라인'의 '1인 미디어'다. 개인의 생각을, 온라인 세상에 표현하는 일종의 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같은 1인 매체인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지인의 인맥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고, 블로그는 포스팅 중심, 즉 블로그의 정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내가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을 다른 사람들이 봐 주길 원하고, 다른 사람들도 블로그에 들어와서 정보를 얻는다.' 이런 시스템 내에서는 사실상 '인맥'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다. 무작위적인 온라인 상의 정보 검색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기 위해서 포스팅을 하는데 인맥이 필요할 리가 없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내용은 굉장히 원론적인 내용이다. 나도 블로그 순수주의순혈주의류 같은건 부정하는 편이고, 무작위적인 대중에게 '정보만을 제공하기 위해' 블로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튼간에, 블로깅을 하다 보면, 자신과 의견이 맞거나, 취향이 맞아 온라인 상의 인맥이 만들어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이런 온라인 상의 인맥들에 대해 별 생각없이 있었던 것도, 그 인맥이 '블로거로서'의 '온라인' 인맥이라는 점이었다.

 초기에 나의 블로그 축제에 대한 입장은 '블로그 축제 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문화관광부의 후원은 문제가 있다.' 였다. 그런 입장을 넘어서 갑자기 인맥 이야기를 꺼내 들먹거리는 것은, 이번 축제에서 보여준 '인맥 만들기'가 어느정도 (블로거로서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ndy Leo 님의 제 1회 블로그축제 후기 : 블로그축제인가 블로그엑스포인가? 에서, 그리고 다른 참석자들의 후기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블로그보다 비지니스 명함이 더 많이 돌더라.' 였다. 분명히 이번 행사는 '블로그 축제'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었고, '블로거들'의 만남을 전면에 내걸었다. 난 블로그 축제가 문화관광부의 후원 문제만 빼면, 블로거들이 만난다는 점에서는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블로거라는 입장에서 축제를 즐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비지니스 명함을 돌리면 블로거의 정체성이 없어진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블로그 축제에 비지니스 명함 같은 것을 돌릴 필요는 없지 않나? 라는 것이다. 단순히 블로거로서 즐기면 될 것을, 자기 PR의 장으로 만들어버렸으니, 그 부분에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남이 무엇을 하든 별로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비지니스 행사에는 비지니스맨의 모습을, 블로그 행사에는 블로거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 정도는 하고 싶다. 민노씨님이 블로그 축제 단상 2.에서 지적하신 것 처럼, 블로그는 - 적어도 블로고스피어 내에서는 - 비지니스를 위한, 혹은 개인의, 개인의 인맥을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블로고스피어에서 블로그는 블로거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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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인본주의는 신과 권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자유의 일등 공신이지만, 인간과 자연을 주체와 객체로 나누고, 인간을 능동체, 자연을 수동체로 규정시킨, 과학과 철학, 역사와 전통같은 '인간의 것'이 자연에 선행한다는 사상에서 탄생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을 합리화시킨 장치이기도 했다. 신학에서 독립한 인본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데카르트의 이분법이 근대 유럽의 환경파괴의 사상적 주범으로 자주 지적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근대 유럽인들은 인간의 과학과 기술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곧 자원이었고, 또한 돈이었다. 인간을 위해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댓가로, 각종 오염물질과 새로운 질병등을 얻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삽으로 파냈던 것들이 비수가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자신들이 자연을 통해 벌었던 돈을 다시 환경에 쏟아붓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당연한 결과로, 현대 인본주의의 개념은 수정되었다. '인간만이 중심인 사상'에서, '인간을 위한 사상'으로 변화했다. 즉, 현대 인본주의를 탄생하게 한 것은, 근대 인본주의의 실패였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해 나갈 정책의 목표는 '선진화'이다. 단순한 산업 사회에서 벗어나, 전통과 새로운 학문에 기반한 인간적인 사회, 인본주의적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 '선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대운하를 추진하려는 것은 정말 역설적이다. 근대 유럽인들이 기술만능주의에 심취해서 벌여놓은, 지극히 오만한 환경에 대한 폭력을, 몇백년 후인 지금 '선진화'를 부르짖으며 행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현대인본주의적인 선진 사회의 모습에 근대인본주의의 폐해가 투영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민노씨님의 [대운하 카운트다운 3 - MB형 육교와 칠레 대운하 (@_@;;;)] 를 읽고 문득 생각난 점을 적어본다.


잡소리) 그나저나, 무슨 글을 쓸 때마다 인본주의가 나오는지, 무슨 인본주의 블로그도 아니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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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생각의 탄생

 '다빈치에서 파인만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라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창조적인 인간상이 미래적 인간상임을 주장한다. 천재는 단순한 암기식, 주입식 교육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놀이와 취미 등, 여러가지 창조적인 활동으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러한 천재들의 예를 들어가면서, 생각의 도구들을 나열, 설명하는데, 읽다보면, 시중의 여타 자기계발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드는 경향도 있지만, '천재'들의 이야기라는 점과, 현실에서의, 사회에서의 성공을 내세워 팔아먹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 그런 느낌을 지워준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지식에 전념하기보단, 사고와 감각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현대식 교육으로는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을 길러낼 수 없으며, 각종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사고를 세웠던 천재들의 예를 들면서, 그런 천재들과 같은 사람들을 길러내기 위해선 현대 교육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이 책을 읽을때, 기대에서 시작해서 무덤덤함으로 끝났다. 뭔가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제시해줄 것만 같은 분위기에 즐거워하며 책을 폈지만, 결국엔, 기존에도 수없이 나왔던 주장들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듯한 분위기에 실망을 하고 책을 덮었다. 하지만, 그 '수없이 나왔던 주장'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했다는 점 만으로도 꽤 만족했기 때문에, '그저 괜찮은 책'이라는 인상으로 내 기억속에 남게 되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책이지만, 책도 두껍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사서 읽는 것보단, 도서관 같은 곳에서 빌려서 읽는 것을 추천한다. 그럴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서,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천재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꽤나 흥미롭다. 사실 난 '생각의 도구'보다 천재들의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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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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